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세계 대전 (문단 편집) === [[인권]] 존중과 현대 윤리의 대두 === [[민간인]]과 [[군인]] 사망자를 모두 합하여 약 5,000만~7,0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사망했다.[* 1939년 세계 인구가 약 20억 명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2~3% 정도의 인구가 사망한 꼴이다.] 이 전쟁의 여파로 서구권에서는 그동안 사회 주류였던 [[집단주의]] 사상이 쇠퇴하고 [[개인주의]] 사상이 대두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다만, 이는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섰던 서구권 한정이고 대부분 독재 정권이 들어섰던 동유럽이나 동아시아 지역 등에서는 경우 개인주의 사상의 대두가 이보다 늦었다.][* 동유럽의 경우는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승자로 떠오른 소련의 영향으로 인한 이유가 있었고,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로 탈바꿈한 이후 [[마오쩌둥]]이 공산주의 공고화와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한반도 역시 소련의 영향을 받은 북한과 미국의 영향을 받은 대한민국이 각각의 권력과 이념 강화를 위해, 일본은 패전국의 지위를 벗어남과 아울러 국가재건이라는 구실로 인한 이유가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전쟁 기간 중 벌어졌던 끔찍한 대량학살과 전쟁 범죄 등에 대한 전 인류적 반성이 행해지면서 [[인권]] 경시 문제에 대한 심각성이 전 세계에서 본격적으로 인지되기 시작하며 인권 의식이 크게 향상되었으며, 개개인의 존엄성과 자유 의지 등을 존중하는 정책들이 적극적으로 대두하였고, 그와 동시에 개인 심리학 또한 크게 발전했다. 이 덕분에 인류는 냉전이 시작된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데탕트]]를 맞이했고 3차 대전의 위기에서 항상 벗어났다. 2차 대전은 참정권이 개선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자치령 또는 식민지들은 본국에 대한 희생의 대가로 자치권의 확대를 요구했으며, 이를 계기로 자치령에 본국과 동등한 입법활동이 보장되거나 많은 식민지가 독립하는 등 변화가 생겼다(후술할 국민국가 탄생 문단 참조). 대부분 국가의 [[여성 참정권]] 역시 이 시기를 기점으로 크게 향상되었는데, 총력전의 여파로 [[여군]] 병과가 연구되었고[* 다만 이들은 비전투병과로 배치되었고 특히 군무원이나 통신, 의무 병과로 배정되었다.], 특히 남성이 징병되면서 산업 공백을 충당하기 위해 여성 노동자가 증가하였으며[* 특히 미국은 여성들이 후방사업으로 군수공장이나 단순 노무자로 취직하여 필요한 물자들이 차질없이 보급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다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서구권에서 여성 노동자의 숫자는 1차대전 이전부터 크게 늘어나고 있었고 여성 참정권 역시 2차 대전 이전부터 인정받았다. 전쟁보다는 산업 분야에서 여성 노동의 확대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여성이 경제활동을 담당하면서 여론을 형성하고 권리 확대를 요구하게 되었다[* 물론 주부라는 고전적인 역할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나 적어도 이 시점을 전후하여 여성들 역시 당당한 국가의 일원으로 부상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목소리 역시 정치권이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은 전후 [[페미니즘]]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역할과 수동적인 이미지를 벗고 국가와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참여하고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자는 의식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여성들 역시 지도자의 자리에도 올라야 한다는 사상도 고취된다.]. 유색인종의 참정권 또한 비슷한 시기에 크게 확대되어, [[미국]]에서는 [[1965년]] 연방 투표권법이 가결되어 유색인종의 참정권이 완전히 보장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